● 미출생신고 ‘전수 실태조사 임박’
지난 7월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2022년 출생했지만 출생신고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 2천여 명에 대한 자치단체의 전수조사 결과를 취합하는 대로 조만간 그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이들 가운데 몇 명이 안전하게 성장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영아 살해나 유기,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등이 공개된다.
출산 기록은 있지만 미출생신고 아동 2천여 명에 대한 정부의 전수조사가 막바지에 달하면서 그동안 묻혀 있던 비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7월 6일 기준으로 전국 시·도청에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 867건이 접수돼 780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중 출생 미신고 영아 가운데 사망자는 27명으로 11명에 대해서는 살해됐을 가능성이 있어 경기남부경찰청, 경남청, 부산청, 인천청 등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여전히 생사 파악조차 안 된 677명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전국 시·도 경찰청별 수사 중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이 159건으로 가장 많고 서울청 132건, 인천청 70건, 경남청 58건, 경기북부청 48건, 대전청·충남청 41건씩, 부산청이 37건을 수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22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경기도 수원에서 친모가 아이를 낳고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을 알리는 ‘출생통보제’ 법제화를 추진하고, 이와 함께 미신고 아동의 어머니를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부터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출산 후 법적으로 출생 신고가 안 돼 ‘투명인간’이 된 영·유아의 실태는 감사원의 영·유아 미신고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에 허점이 있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이를 위해 2015년~2022년까지 8년간 의료기관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사례가 있는지 조사했고,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하는 것을 확인했다. 지역별로는 경기(641명)와 서울(470명)에 위기 아동이 쏠렸다. 인천(157명), 경남(122명), 경북(98명) 등이 뒤를 이었다.
감사원은 이 중 학령기에 들었거나, 보호자가 타당한 이유 없이 연락을 거부한 경우 등에 해당하는 아동 약 1%(23명)를 표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뒤 관할 지자체와 아동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들 ‘유령아동’ 가운데 1% 표본조사에서조차 최소 3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감사원 감사 결과에 피해 아동이 훨씬 많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보건복지부가 즉각적 전수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 병원밖 출산 ‘추적 한층 어려워’
▲ 출생 미신고 / 사진 = KBS 뉴스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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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는 출생신고를 해야 나오지만, 필수예방접종 관련 임시 신생아번호는 주민번호와 별개로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부여된다. 진료기관은 B형간염 백신 접종 등 신생아 필수접종을 실시하고 질병관리청으로부터 그 비용을 정산받기 때문이다.
유령아동에 대한 실태 파악이 그동안 어려웠던 것은 병원의 출산 기록이 그대로 출생신고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접종을 위한 임시 신생아 번호에 모친의 정보는 담기지 않는 한계 탓에 미신고 아동 추적은 답보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SBS가 지난 2년간 결핵 예방접종(BCG)을 한 신생아와 실제 출생신고 건수를 비교했더니 BCG접종을 한 신생아가 1만 명이 더 많았다.
이처럼, 미신고 아동 대상 사건은 부모가 출생 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정부가 아동의 존재를 파악하기 어려운 복지체계의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병원 밖에서 태어난 영·유아들까지 고려하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유령아동’은 더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초 감사원이 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2천 명 넘는 유령아동 존재를 확인하는 데엔 ‘임시신생아번호’가 활용됐는데, 관련 시스템이 완전히 구현된 것이 2015년부터이다. 임시신생아번호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게 출생신고 전 예방접종을 위해 부여하는 7자리 번호다. 일단 임시신생아번호로 예방접종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됐다가 이후 출생신고가 되면 주민등록번호로 대체된다.
특히 임시신생아번호 관리 시스템이 정착된 2015년 이전 출생아에 대해서는 이번 전수조사와 같은 추적도 용이하지 않다. 예방접종통합관리시스템이 시범 도입된 2009년부터 임시신생아번호가 활용되긴 했지만, 임시신생아번호 관리 기능이 완비된 것은 2015년부터이기 때문에 이전 통계는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실제로 경기도가 자체 시스템에 임시신생아번호로만 남아있는 2014년 이전 출생 아동의 현황을 발표했는데, 2009∼2014년 출생 미신고 아동이 3천454명으로, 2015년 이후 8년간의 624명보다 훨씬 많이 집계됐다.
● 익명의 ‘보호출산제 도입’ 서둘러야
최근,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영·유아 인권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부모 등 어른에 의해 살해되고 유기된 사실이 다수 드러나면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영아 유기 사건의 상당수가 미혼모에 의한 것이었는데,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은 과거에 더욱 심했기에 유기 등의 사례가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수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더 많은 미신고 아동을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공공기관의 역할로만은 한계가 있으니 민관이 함께 협력·소통하면서 이제는 그런 아이들을 발굴해 보호해야 한다.
특히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혼모 등 위기 임신부 등이 숨지 않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도록 인식이 바뀌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미출생 신고의 대책 못지않게 출생 후의 아동 학대 예방 대책 또한 효율성 있게 진척되어야 한다.
올 2월 12일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 2020년 43명, 2021년 40명으로, 연평균 38명꼴이다. 연령대로 보면, 아동학대 사망 아동 중 0세부터 만 3세까지 영유아가 26명으로, 65.0%를 차지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대책 마련 논의도 이어지지만, 관련 인프라 확충을 비롯한 실질적인 예방 대책은 여전히 태부족이다. 이에 맞서 예방·조기발견, 사후대응 등에 대한 정책뿐만 아니라 자녀 양육 및 학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제도화돼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실시한 ‘임산부·영유아 대상’ 생애 초기 가정방문 사업을 아동학대 예방과 연계해 지역 보건소, 사회복지사나 아동학대 전문 인력이 동행해 양육과 관련한 전반적 실상을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일반 가정을 대상으로 건강·발육부터 부모의 양육관까지 두루 살피는 국가 차원의 방문 모델을 적극 도입하면 예방 효과가 괄목할 것이다.